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
2026.06.04 - 2026.10.04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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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2026. 06. 04 - 2026. 10.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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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퐁피두 컬렉션 43인, KOREA FOCUS 1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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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1, 2 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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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최/주관
한화문화재단 / 퐁피두센터 한화, 퐁피두센터 파리
퐁피두센터 한화의 개관전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은 한화문화재단과 프랑스 퐁피두센터의 파트너십 아래 선보이는 첫 번째 프로젝트로, 큐비즘이 탄생한 도시 파리를 중심으로, 1907년부터 1927년까지 약 20년에 걸친 흐름을 폭넓게 조망합니다.
전시는 퐁피두센터 소장품 92점으로 구성된 여덟 개의 섹션과 한국적 맥락을 다루는 특별 섹션으로 이루어지며, 큐비즘이 어떻게 등장하고 확산되었는지를 입체적으로 살펴봅니다. 기존의 원근법과 재현 방식을 근본적으로 뒤흔든 큐비즘은 대상을 분해하고 재구성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며, 20세기 미술의 흐름을 바꾼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실험은 파블로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를 중심으로 시작되어, 후안 그리스, 로베르 들로네, 알베르 글레이즈, 페르낭 레제 등 동시대 예술가들에게 확산되었습니다. 이후 큐비즘은 다양한 경향으로 분화하며 국제적인 예술 운동으로 자리 잡았고, 회화뿐 아니라 조각, 영화 등 다양한 매체로 그 영향이 확장되었습니다.
한국 근현대 회화 작품 21점과 아카이브 미디어 설치 및 영상 커미션으로 구성된 특별 섹션 KOREA FOCUS에서는 20세기 전반 한국 근대 예술 형성 과정에서 파리가 지녔던 문화적 의미를 조명합니다. 큐비즘과 1920년대 이후 한국의 미술, 문학, 음악, 무용 등 다양한 예술 분야 간의 교차점을 살펴보며, 큐비즘 이후 전개된 아방가르드 운동이 한국 사회 속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변형되었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줍니다.
Contents
전시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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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새로운 언어의 탄생: 큐비즘의 시작 1907–1908
01큐비즘의 기원을 이해하는 열쇠로 꼽히는 영향은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 미술의 초기 수집품들이며, 다른 하나는 인상주의 거장 폴 세잔의 작업입니다. 1907년 파리의 트로카데로 민족지학 박물관을 방문한 파블로 피카소는 그곳에서 자신의 걸작을 위한 중요한 영감의 원천을 발견했습니다. 이 시기에 제작된 피카소의 작업은 그가 아프리카 미술을 차용하고 재해석한 방식을 보여줍니다. 몽마르트르 바토-라부아르에 있는 피카소의 작업실에서 큰 자극을 받은 조르주 브라크는 곧 세잔에서 영감을 얻은 작업을 그리며 이에 화답했습니다. 1908년 미술 비평가 루이 보셀은 역시 세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이 시기 브라크의 정물화와 풍경화를 두고 “기하학적 도식, 즉 큐브(cube)로” 환원되었다고 묘사했으며, 이렇게 큐비즘이 출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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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형태와 공간의 해체: 분석적 큐비즘 1909–1911
02미술상 다니엘-헨리 칸바일러가 처음 제안한 ‘분석적 큐비즘’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1909년부터 1911년 사이 조르주 브라크와 파블로 피카소가 발전시킨 큐비즘의 가장 엄격하고 급진적인 단계를 가리킵니다. 1909년 여름, 두 예술가는 매우 기하학적인 형태를 띤 유사한 풍경화를 그린 후 자신들의 미학적 목표가 일치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긴밀히 협업하기 시작했습니다. 브라크가 “밧줄로 묶인 등반가들”에 비유한 두 사람은 대담한 형식적 해체를 시도하며 정물화(브라크)와 인물화(피카소)를 통해 대상을 충실하게 모방하는 환영주의로부터 멀어졌습니다. 사물과 풍경, 인물은 수정 같은 구성으로 해체되었고 전경과 배경의 구분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몽마르트르 바토-라부아르 작업실에서 피카소의 이웃이었던 후안 그리스 역시 1910년경 큐비즘으로 ‘전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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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대중과 마주하다: 살롱 큐비즘 1910–1913
03큐비즘은 살롱 데 앵데팡당, 살롱 도톤, 살롱 드 라 섹시옹 도르를 통해 파리 대중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조르주 브라크와 파블로 피카소는 이들 전시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이러한 주요 전시는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니면서도 공통된 미학적 신념을 공유한 예술가들의 명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11년 로베르 들로네, 알베르 글레이즈, 페르낭 레제, 앙리 르 포코니에, 장 메챙제는 살롱 데 앵데팡당에서 함께 작품을 전시했습니다. 이 최초의 집단 전시는 스캔들을 일으켰고 이어진 언론의 반응은 대부분 적대적이었습니다. 브라크나 피카소와 달리 ‘살롱 큐비스트’들은 서사적 주제에 집중했으며 때로는 고전 미술에서 영감을 받은 도상적 모티프를 사용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들로네와 레제가 1912년 살롱 데 앵데팡당에서 선보인 작품처럼 대형 회화를 선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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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색채, 리듬, 추상: 오르픽 큐비즘 1912–1914
041912년 말 무렵 시인이자 비평가 기욤 아폴리네르는 큐비즘 운동 내부의 서로 다른 경향들을 구분하면서 그 중에서도 그리스·로마 신화의 시인이자 음악가인 오르페우스를 참조한 용어인 ‘오르픽’ 큐비즘에 주목했습니다. 아폴리네르에 따르면 오르픽 큐비즘은 “보이는 현실이 아니라 예술가가 전적으로 창조하여 강렬한 현실성을 부여한 요소들로 새로운 구성을 그리는 예술”입니다. 각자 다른 길을 걸었지만 ‘오르피즘 작가’로 분류되는 예술가들은 공통된 미학적 관심으로 결속되어 있습니다. 리듬, 시공간 속 움직임, 음악과 춤 등 모든 ‘추상적’ 개념과 현상이 그들의 다채로운 구성에서 중심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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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현실의 재구성: 종합적 큐비즘 1912–1914
051912년 봄 파블로 피카소는 자신의 첫 콜라주를 제작했습니다. 서로 다른 지각의 층위를 흐리는 이러한 시도는 1912년 여름 조르주 브라크가 나뭇결무늬 벽지 조각을 붙인 파피에 콜레를 발명하면서 계속되었습니다. 분석적 큐비즘의 이른바 ‘난해한’ 단계에서 나타났던 추상화의 유혹은 이렇듯 평범한 현실이 개입하면서 사라졌습니다. 1913년과 1914년 사이 브라크와 피카소, 그리고 곧이어 후안 그리스는 콜라주와 파피에 콜레, 이질적인 사물들의 조합에서 얻은 구조적 틀을 회화적 구성으로 옮겨놓았습니다. 그리스가 언급한 ‘종합적’ 큐비즘은 다양한 질감과 색채 효과, 특히 서로 다른 재료의 모방을 특징으로 했으며, 이는 트롱프뢰유 회화의 전통을 유희적인 방식으로 교란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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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이동과 번역: 국경을 넘은 큐비즘 1912–1914
06조르주 브라크와 파블로 피카소가 발전시킨 큐비즘은 곧 프랑스 국경을 넘어 널리 확산되었고, 이러한 국제적 확산은 파리에 체류하던 많은 외국인 예술가들과 수집가들 덕분이었습니다. 동시에 큐비즘 작품들이 유럽, 제정 러시아, 미국에서 열린 전시들을 순회하며 각 지역 미술계에 자극을 주고 새로운 큐비즘 중심지의 형성을 촉진했습니다. 이탈리아 화가 지노 세베리니와 알베르토 마넬리를 비롯해 러시아의 ‘입체미래주의’ 작가들, 나탈리아 곤차로바, 미하일 라리오노프, 장 푸니, 조르주 야쿨로프는 이러한 국제적 교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독창적인 종합을 이루며 미래주의의 속도 숭배와 강렬한 색채를 큐비즘의 해체 및 콜라주와 결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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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흩어진 궤적들: 전쟁기 큐비즘 1914–1918
07제1차 세계대전은 큐비즘이라는 성좌 전체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조르주 브라크, 페르낭 레제, 알베르 글레이즈, 장 메챙제, 자크 비용 등 프랑스 화가들은 징집되어 각자 부대로 배치되었고, 다른 나라로 망명하거나 피에르 알베르-비로처럼 군 복무 부적합 판정을 받은 이들도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군 복무를 면제받은 앙리 로랑스는 1915년 큐비즘 조각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한편 후안 그리스와 파블로 피카소 같은 중립국 출신 예술가들은 보다 자유롭게 탐구를 지속할 수 있었고, 두 사람은 1917년 무렵 신고전주의적 경향으로 선회했습니다. 1915년 레제는 한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이 전쟁보다 더 큐비즘적인 것은 없다. 전쟁은 사람을 여러 조각으로 깔끔하게 잘라 사방으로 보내버리기 때문이다.” 큐비즘 자체도 여러 경향으로 분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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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실험에서 양식으로: 1920년대의 큐비즘 1918–1927
08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극심한 단절을 겪은 이후, 1920년대의 큐비즘은 전후 일어난 에스프리 누보(새로운 정신)의 영향에 반응하며 일련의 변화를 겪었습니다. 1914년 이전의 급진적 실험 이후, ‘질서로의 회귀’ 혹은 ‘질서로의 소환’이라는 새로운 시대, 그리고 때로 ‘길들여진 큐비즘’으로 묘사되는 아르데코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술가들은 세련된 절제미부터 특정한 고전주의 양식들과 장식적 풍요로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선택을 시도했습니다. 한편에서는 후안 그리스가 프랑스 중세 회화의 전통을 되살렸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메데 오장팡과 르 코르뷔지에가 기계 세계에서 영감을 받은 새로운 미학인 순수주의를 주창했으며 이는 페르낭 레제 역시 공유한 관심사였습니다. 이제 큐비즘은 하나의 공통된 미술 언어가 되었고, 루이 라타피와 앙드레 뤼르사 같은 젊은 세대 예술가들이 이를 활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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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KOREA FOCUS: 모던 아방가르드를 향한 꿈의 지도
09본 섹션은 1920~30년대 식민지 도시 경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근대 예술 실험의 장에서 출발합니다. 당시 예술가들은 회화, 문학, 무용, 건축, 사진, 영화 등 다양한 매체를 실험하며 새로운 시대의 감각을 모색하는 한편, 파리를 보편적 ‘모던’의 기준이자 예술적 이상향으로 상상했습니다. 특히 ‘큐비스트적 시인’으로 불린 이상과 동시대 예술가·지식인들의 교류는 문학과 공연, 도시 문화 전반에서 새로운 표현을 실험하는 역동적인 장을 형성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해방과 전쟁을 거친 1950년대에 입체주의의 조형 실험으로 이어지며 한국 미술이 구상에서 추상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전환을 이끌었습니다. 전시는 이 같은 만남과 변화의 과정을 오늘의 매체와 연출을 통해 시각적·공간적 서사로 풀어냅니다.